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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이야기

호생관 최북

불꽃緝熙 2014. 2. 20. 17:55

 

  

한밤의 사진편지 제2063호 (14/2/20/목) 

 

[한사모' 공식 카페] -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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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눈을 찌른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 

 

밤이 깊어갑니다.

19일 어제는 봄의 절기 중 두번 째 절기인

우수(雨水)였습니다.

 

옛 세시기에

"입춘이 지나면 동해동풍이라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우수가 오고 15일 뒤 경칩(3월6일)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처럼 우수는 눈이 비로 바뀌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이니 이제

추운 겨울이 가고 이른바 봄을 맞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땅속에서 뛰어나온다는 경칩(驚蟄)이 오기전,

기러기는 북쪽으로 날아가고 초목들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수와 경칩을 지나면 아무리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완연한 봄이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오늘은 실력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 후기

화가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1712-1786)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16일(일), KBS 진품명품 방송 때

호생관 최북의 250년 전, 작품 '전원락사도'가

서정적인 풍경화로 판정되며

 

3,500만원의 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귀를 자른 예술적 광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와  비슷한

조선의 화가였다는 내용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그는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동시대를 살았던 조선 후기

뛰어난 화가였지만 그의 탄생 3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알아줄 정도로 그동안 명성이나 지명도가

거의 없던 화가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최북은 안정된 생활과 벼슬이 보장되는 도화서

화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전업화가로

지내면서,

 

자신의 호를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의 毫生館(호생관)으로 짓고,

 

예술과 예술가를 양반과 왕족의 완상물(玩賞物)정도로

여기는 그들의 부당한 요구에 거칠게

맞섰던 화가였습니다.

 

그림을 강요하는 높은 벼술아치의 위협에

"남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 눈이 먼저 나를 저버린다"며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저항했던 것입니다.

 

-<호생관 최북 자화상>-

 

스스로 귀를 잘라버린 네델란드 출신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알고 있었지만,

 

그 보다 140년 앞선시대에 태어나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버린 우리나라의 화가

<최북>을 이제야 알게 된 저 자신이

무척 아쉬었습니다.

 

최북은 솔직하고 대담하면서도 기운이 생동하는 필법으로

산수. 인물. 영모(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화조(꽃과 새를 함께 그린 그림) 등을

 

두루 다 잘 그렸던 화가였으나 

 

이름 북(北)자를 둘로 쪼개 못난이, 바보를 뜻하는

칠칠(七七)이라고 하면서

 

아무 곳에도 매인 데가 없는 자유인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림은 자기가 그리고 싶을 때만 그리고, 그려주고

싶은 사람에게만 그려주었습니다.

 

-<草屋山水:초옥산수>-

 

그림을 그려준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 하거나

요구 사항이 계속되면 받은 돈을 도로 돌려주고 그림을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이 지금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 것도

아마 그런 연유인 것 같습니다. 

 

 눈은 화가에게 목숨과 같이 귀중할 것일진대

스스로 눈을 찔러가면서 양반사회에 굴하지 않는 기질을

보여 준 것은 기득권의 권위와 강요에 대한

저항이자 기개였을 것입니다.

 

-<風雪夜歸人圖:풍설야귀인도>-

 

애꾸가 된 최북은 그 후로 전국을 유랑하며

그림을 팔아 얻은 동전 몇 닢으로 자신을

천대하는 세상을 원망하며 술에 취해

지냈다고 합니다.

 

어느 추운날 그림 한 점을 팔고는

한밤중 술에 취해 돌아 오는 길에 성곽 모퉁이에

쓰러져 얼어 죽었다고 합니다.

 

기인이나 괴짜들의 행적이 대개 그렇듯이

최북에 대해서도 알려진 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금강산전도>-

  

그가 전라도 무주 사람이며 49세로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것만이 그에 대한 전기적(傳奇的)사실로

남아 있는 것의 전부라고 합니다.

 

바보, 못난이 칠칠(七七)이라고 한 것은

 <칠칠은 사십구이니 그 자신이 49세에 죽을 줄을

미리 알았다는 뜻>이었다고 말들 합니다.

 

추측건대, 그는 철저하게 떠돌이로 지내면서

한 세상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국화와벌>-

 

-[최북의 참고자료 : 스스로 제 눈을 찌른,호생관 최북]-

<허영환(許英桓)<1937년생,전,성신여대교수>

 

-<溪流圖:계류도>-

 

저는 "호생관 최북"을 한국의 <빈센트 반 고흐 최북>이 아닌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 의 원조 최북>

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깊어가는 우수(雨水) 다음날 오늘,

기인이고 괴짜이며 천재였던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 작품을 감상하시면서

봄을 맞이하셨으면 합니다.

 

-<갈피화룡:葛陂化龍>-

 

-<개>-

 

-<게와갈대>-

 

-<공산무인도:空山無人圖>-

 

-<난초>-

 

-<매>-

-<맹우도:猛牛圖>-

 

-<메추라기와 조>-

 

-<메추라기>-

 

-<모란도>-

 

-<사시팔경도중 늦봄>-

 

-<산수화>-

 

-<소채도>-

 

-<수각산수도>-

 

-<수하관폭도>-

 

-<애련도:愛蓮圖>-

 

-<조어산수:釣魚山水>-

 

-<추경산수도>-

 

-<서설홍청:鼠齧紅靑>-

 

-<토끼>-

 

-<표훈사도:表訓寺圖>-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

 

편안한 밤 되시고 찬란한 아침햇살을

가슴에 가득 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태종 드림.

 

 

-[드보르작 신세계교향곡 2악장(라르고) /뉴욕필 평양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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