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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이야기

신사임당과 초충도

불꽃緝熙 2014. 3. 13. 17:51

 

  

한밤의 사진편지 제2069호 (14/3/13/목) 

 

[한사모' 공식 카페] - 'Romantic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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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申師任堂), 초충도(草蟲圖).

 

밤이 깊었습니다.

오늘이 훌쩍 어제가 되었습니다.

내일도 훌쩍 또 오늘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과거도 오늘이었고

내일도 오늘인 것 같습니다.

 

항상 오늘은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는 과거도 오늘이요

미래도 오늘이라고 말했나 봅니다.

 
지금에 없는 어제는 버리십시요.

지금에 없는 내일은 믿지 마십시요.

 

제가 드리는 말이 아닙니다.

 

"과거는 과거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미래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

 

현재보다는 오늘이 더 중요하다.

오늘보다는 지금이 더 중요하다.

 

지금과 오늘을 소중히 여기고,
이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있다고 확신하자."

 

프랑스 소설가 [A. 모루아]의 말입니다. 

 

저는 오늘, 1504년 강릉에서 나고 자라

1551년(48세) 세상을 떠났으나,

 

항상 어제보다는 오늘, 내일보다는 지금에 충실하면서,

 

2014년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작품 초충도(草蟲圖)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19세에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한 신사임당은

시서화(詩書畵) 모두에 뛰어난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문인이었습니다.

 

현모양처의 아내로 존경하는 어머니로

생전, 사후에도 존경받는 생을 살았고 마쳤습니다.

 

현행, 오만 원권 지폐의 초상으로, 뒷면에

어머니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가 그려진 오천 원권  

지폐의 초상인 아들 율곡과 함께 우리들의

곁에 항상 있습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는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 명화로 꼽히고 있습니다.

 

율곡(栗谷)은 어머니의 행장(行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유년시절 부터 경전에 통(通)하고,

글짓기에 능하고, 바느질이 능하고, 자수 실력은 지극히

정교했으며, 천성 또한 온화하고 고상했다.

 

말 수가 적고 행동은 신중했으며 스스로 겸손헀다,

 

평소 그림솜씨가 비범하여 7세 때 부터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그렸고, 초충. 영모(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포도를 잘 그려 세상에 견줄 만한 이가 없었다.]-

 

신사임당의 유명한 초충도(草蟲圖)는 8폭 화첩이

가장 유명하며 이들은 대개 비슷한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오이와 메뚜기

 

2.물봉선화와 쇠똥벌레

 

3. 수박과 여치

 

4.가지와 범의땅개

 

5. 맨드라미와 개구리

 

6. 가선화와 풀거미

 

7. 봉선화와 잠자리

 

8. 원추리와 벌 

 

다음은 유홍준의 <명작순례 :2013.12.15>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사임당의 초충도는 섬세한 필치와 미려한 채색으로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품격이 있다.

 

그림의 주제인 풀과 벌레를 보면 모두 사생에

기초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토속적인데,

 

나비, 벌 등의 표현이 마치 곤충채집을 

한 것처럼 좌우 대칭을 이룬다.

 

이는 자수의 본으로 그렸기 때문이며

그런 조용한 정지감 속에서 우리는 정서의

해맑은 표백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사임당은 작품에 낙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증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

 

사임당의 그림에 도서낙관이 없는 것은 당시의 풍조가

그러했던 점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인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자체가 흠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이원수의 사랑방에 친구들이 찾아와 노닐다가

"자네 아내 그림 솜씨 좀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이에 안채로 사람을 보내

 

그림을 그려 보내라고 하였더니 사임당은 한사코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기를 제삼 제사에 이르자 사임당은

 

남편의 청을 무작정 거절하는 것도

아내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결국 그림을 그려 보냈는데

백자 접시 위에 그린 것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지워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러니 사임당의 도서낙관은

애당초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임당의 작품 감정은 화풍, 재료뿐만 아니라

그 그림의 내력과 증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오늘 여기에 옮겨진 초충도는 신빙할 수 있는

그림만을 올려 놓았으니, 감상하시면서

오는 봄을 맞이하셨으면

합니다.

 

<팔폭초충도>

 

<수박과 쥐>

 

<어숭이와 개구리>

 

<산차조기와 사마귀>

 

<양귀비와 도마뱀>

 

<맨드라미와 쇠똥벌레>

 

<도라지꽃과 여치>

 

<가지와 방아개비>

 

<신사임당초충도병(申師任堂草蟲圖屛):강원도유형문화재제11호>

 

<꽈리와 잠자리>

 

 

신사임당의 따뜻한 마음씨를 전합니다.

 

어느 날 잔칫집에 초대받은 신사임당이 여러

귀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국을 나르던 하녀가 어느 부인의

치맛자락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그 부인의 치마가 다 젖었다.

 

"이를 어쩌나, 빌려 입고 온 옷을 버렸으니....."

그 부인은 가난하여 잔치에 입고 올 옷이 없어 다른 사람에게

새 옷을 빌려 입고 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옷을 버렸으니 걱정이 태산같았다.

그런데 신사임당이 그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 저에게 그 치마를 잠시 벗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수습을 해 보겠습니다."


부인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신사임당에게

옷을 벗어 주었다.

 

그러자 신사임당은 붓을 들고 치마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치마에 얼룩져 묻어 있었던 국물 자국이

신사임당의 붓이 지나갈 때마다 탐스러운 포도송이가 되기도 하고,

싱싱한 잎사귀가 되기도 했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그림이 완성되자 신사임당은 치마를 내놓으며

그것을 팔아서 비용을 마련하게 하였다.

 

"이 치마를 시장에 가지고 나가서 파세요.

그러면 새 치마를 살 돈이 마련될 것입니다."

 

실수로 빌려온 옷을 버렸던 그 귀부인은 치마를 팔았는데,

실물과도 같아서 비싼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포도>

 

편안한 밤되시고, 찬란한 아침햇살을

듬뿍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배경음악으로 들으신 영상물을 다시 재생하시어

<아름다운 봄> <경이로운 봄>을 새롭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김태종 드림.

 

 

 

Beautiful Nature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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