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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모니카 솜씨 끝내주는 할머니·할아버지들..美카네기홀 공연이 목표? 본문
http://v.media.daum.net/v/20160317112108695
무대 위에는 25명가량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 열심히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공연 팀의 이름은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
지인으로부터 “하모니카 솜씨가 ‘끝내주는’ 할매, 할배들이 있으니 한번 보러 오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지만 실제 공연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장의 첫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무대 위아래가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꽉 차 있는 공연을 경험한 것은 처음이어서.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이런 단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이에 대한 당당함’ ‘절제된 정열’ ‘조용한 공감’ ‘노년의 즐거움’ 등등.
여성단원들의 롱드레스와 남성단원들의 나비넥타이는 그런 프라이드의 심벌이 아니었을까.
3월 11일 저녁 서울 세종문회회관 체임버홀에서 공연 중인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 |
단원의 평균 나이는 71세.
매주 금요일 오후 서울 관악구 남현동 자치회관에 모여 3시간씩 연습을 한다.
팀을 결성한 것은 2009년 11월 9일.
현재 팀원은 24명(여자 18명, 남자 6명)으로 대부분이 창단 멤버다.
그런 사람들이 빠지지 않고 매주 연습을 하고 있으니 실력이 늘 수밖에.
소통과 화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장인 윤정자 씨(70)는
“간식 시간만 되면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하는 바람에 교통정리를 하느라 힘이 들 정도”라며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이다.
단원인 이석용 씨(74·전북 남원)는 말한다.
“내 목표는 하모니카 실력을 늘리는 게 아니다. 나이든 사람들끼리 같은 취미를 갖고,
같이 노력하면 생활이 풍요로워지지 않겠는가. 나는 우연히 이 팀에 들어왔지만 다른 단원들은
매주 함께 걷기도 하니 더 친해지고, 건강관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걷기’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하모니카앙상블을 알려면
실버세대 걷기 단체인 ‘한밤의 사진편지를 사랑하는 모임’(한사모)과
모임의 출발점이 된 ‘한밤의 사진편지’를 설명해야 한다.
한사모 회원들이 5년간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모두 걷고 2013년 4월 6일 종착지인 경기도 파주 임진각으로 골인하는 모습을 보도한 동아일보 지면. |
그런데 일이 일을 낳았다.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한밤의 사진편지를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오프라인 행사를 시작한 것.
오프라인 행사의 동인은 걷기였다.
함 교수 부부는 2006년 둘이서 서울 남대문에서 고향인 전주 남문까지 걸었는데,
이것이 회원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회원들은 2007년 1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후에 만나 ‘주말걷기’를 시작했는데
“제주도를 걷자” “관동팔경을 걷자”로 발전하더니 결국은 국토순례로 이어졌다.
한사모 회원 91명은 2008년 4월 강원도 고성통일전망대를 출발했다.
휴일과 주말을 이용해 동해안, 남해안, 서해안을
모두 걸어 U자형으로 잇자는 국토 걷기 대장정을 시작한 것.
회원들은 5년간 11차례에 걸쳐 총 3800리(1517km)를 걸었다.
2013년 4월 6일 종착지였던 경기 파주의 임진각에 도착한 회원들은 만세를 부르며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회원들은 이 U자 걷기를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주말걷기는 3월 6일에 420회를 맞았다.
주말걷기는 계절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나 3시에 만나
2시간 반 정도를 걷고 저녁을 먹고 헤어진다.
회비는 1만원. 보통 50여명이 나오는데 절반은 부부다.
윤현희 씨(61)는 교육계 경험은 없으나 함 교수의 권유로 지난해 9월에 걷기 모임에 합류했다.
윤 씨는 “회원들이 서로 잘 아는 사이라 유대감도 강하고 매우 젊잖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안심하고 참여할 수 있고, 나올 때마다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함 교수는 ’편지‘를 시작한지 6, 7년간은 혼자서 연락하고, 업로드하고, 사전답사하고,
후기를 올렸다. 밤을 새우기 일쑤여서 눈도 많이 상했다.
부인 박 씨는 “얄밉기도 하고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일을 통해 노년의 보람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편지’는 3월 11일 현재 2358호가 나갔다.
지금은 운영위원들을 두어 일을 분담하고 있다.
함 교수의 뒤를 이어 2015년 1월부터 ’한사모‘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경환 씨(72)도
함 교수와 교육부에서 30여 년 간 함께 일한 편수관 출신.
이 회장은 “정년퇴임을 한 뒤 의욕을 잃기 쉬우나
한사모를 통해 매주 만나고, 배우고, 배려하면서 도전의식과 성취의욕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도 걷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일부 회원들이 걸으면서도 휴대하기가 간편한 하모니카를 갖고 와 연주로 피로를 풀어주기도 하고,
저녁에 숙소에서 열린 팀별 장기자랑 때 실력을 선보인 것이 계기가 돼 아예 공연단을 구성하게 됐다.
당시의 장기자랑에 대해 함 교수는 어느 글에서
“60대 중반의 할머니들이 이처럼 멋진 연주를 일 년 만에 해내는 것을 보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새로운 꿈과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장한 할머니들의 보람 있는 인간승리였습니다“고 썼다.
이 장기자랑이 있은 지 사흘 뒤에 앙상블은 정식 출범한다.
‘한밤의 사진편지’가 ‘한사모’를 낳고 ’한사모‘가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을 낳은 셈이다.
앙상블은 지난해 큰 선물을 받았다.
10월 17일(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8일(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열린
제2회 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에서 예선을 거쳐 다른 11개 팀과 당당히 본선무대를 밟았고
관객과 전문가 심사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피날레공연에도 참여했던 것.
물론 12개 팀 중 최고령 팀이었다.
단원들은 꽤 늦은 나이에 ‘한 뼘 악기로, 열 뼘 즐거운 인생’을 내걸고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물론 즐거웠다.
그런데 그 즐거움의 끝에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매우 기뻐했다.
아니 자랑스러워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하다.
이번 체임버홀 공연도 작년 공연덕분.
이번 공연은 ‘모두를 위한 오케스트라 에피소드 Ⅱ’로
올 가을에 있을 제3회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의 워밍업 성격이었다.
앙상블은 이번 초청공연을 제5회 정기공연과 겸해서 열었다.
앙상블은 5차례의 정기공연 외에도 협연과 위문공연, 특별출연 등으로도 15차례나 무대에 섰다.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의 공연 및 연습 장면 |
앙상블의 성취를 말하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최승준 숙명여대 명예교수(70)다.
그는 2012년 1월부터 앙상블의 지휘를 맡고 있다.
최 교수는 서울대 음대 작곡가를 졸업하고 숙명여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음대 학장까지 지낸 정통파 작곡가. 그런 그가 어떻게 아마추어팀을 맡게 됐을까.
“우연이었어요. 인터넷을 뒤지다가 함수곤 씨 블로그를 봤는데
당시 사는 곳이 용산구 효창동이더라고요. 숙대가 바로 옆의 청파동이어서 한번 만나자고 했지요.
그때 마침 숙대에서 ‘모던하모니카앙상블’ 공연을 할 예정이었는데,
원한다면 초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사모 회원들이 많이 보러 왔고,
그것이 계기가 돼 얼마 뒤 지휘를 맡게 됐습니다.”
최 교수의 도움으로 앙상블은 크게 ‘업그레이드’ 됐다.
그는 팀을 맡으면서
“그저 노후를 즐긴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뭔가 물건을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실천했다.
그는 하모니카를 전공한 연주자들과 활동하는 ‘모던하모니카앙상블’의 대표로서
편곡과 지도, 연주까지 담당하고 있다.
최 교수는 말한다.
“세상에 좋은 곡은 많지만, 하모니카만을 위한 곡은 없다. 다른 팀에는 없는데,
우리 팀에는 있는 게 있다. 하모니카를 위한 맞춤형 편곡이다.”
그 중요하다는 ‘편곡’을 담당한 사람은 물론 최 교수다.
하모니카에 적합하게 편곡한 곡을 연주하다보니 기술도 많이 늘고 음악성도 깊어졌다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물론 “단원들이 정말로 열심히 연습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최 교수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회원들 중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없다. 프로의 경지에는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같은 연령대에서는 남들이 못하는 음악을 하고 있다.
듣는 사람들까지 감동할 수 있는 음악을 하겠다.
복지관이나 문화센터에서 혼자 하모니카를 배우고, 혼자 즐기는 경우가 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이 배우는 것도 함께 하고,
듣는 것도 함께 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 단체의 새로운 롤 모델이 되길 기대한다.
하모니카를 장난감이 아니라 악기로 인정하게 만든 단원들이 자랑스럽다.”
다시 공연으로 돌아가자. 이날 앙상블은 20곡의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레퍼토리는 고향땅(한용희), 추억의 솔렌자라(마르시아), 노래는 즐겁다(독일민요),
에델바이스(로저스), 오블라디 오블라다(폴 매카트니) 등 매우 다양했다.
처녀뱃사공(한복남)을 연주할 때는
350여 명의 청중들도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호응했다.
지휘를 맡은 최 교수는 ”하모니카와 옛날 가요가 의외로 잘 맞는다“며
앙코르곡으로 ’비 내리는 고모령‘을 연주했다.
공연은 끝났지만 행사는 끝나지 않았다. 체임버홀 밖은 기념사진을 찍느라 한동안 혼잡했다.
그때야 알게 됐다. 관객 중에 의외로 어린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연주자인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축하하러 온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드레스를 입은 할머니와 나비넥타이를 맨 할아버지들이 기쁠 만도 하다.
지금까지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드레스 입은 손녀, 나비넥타이 맨 손자를 축하한 적은 많았지만,
막상 본인이 그런 모습으로 축하를 받은 적은 드물지 않겠는가.
그건 손자와 손녀도 마찬가지다.
그저 나이만 많은 줄 알았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기도 못하는 하모니카를 저렇게 잘 불 줄이야!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의 공연 및 연습 장면 |
그러나 기자는 ‘당당함’ 뒤에서 또 하나의 마음을 읽는다. ‘순응’이다.
간혹 ‘순응’을 비겁한 타협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세월에 대한 순응은 살아온 날들에 대한 만족과
앞으로 남은 날들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만족하게 살았고 기대를 갖고 살아가고 있기에
’할미꽃‘으로 불리는데 저항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닐까.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을 보며 새삼 인연의 소중함도 느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모임도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관심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연이 끝나고 앙상블팀과 한사모팀이 전부 모여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말이다.
‘할미꽃’의 하모니카 소리가 더욱 맑고 깊어지길 기대해 본다.
●할미꽃하모니카앙상블
하모니카:
윤정자 이정수 이영례 윤삼가 소정자 박현자 김정희 정광자
신애자 김운자 김채식 임명자 오기진 양정옥 이복주 박정임 김소영
이달희 정전택 김민종 이석용 김영신
이병란 이유지 박효경,
기타:임병춘, 타악기:윤정아, 콘트라베이스:김미환, 키보드:이일규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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