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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

축일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Cecilia)

불꽃緝熙 2014. 11. 22. 12:03

축일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Cecilia)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연도: +230년?

 

같은이름: 세실리아, 쎄실리아, 카이킬리아, 케킬리아

 

 

성녀 체칠리아(Caecilia)

 

여러 필사본으로 전래된 성녀 체칠리아(Caecilia)의 순교록은 5세기 중엽에 기록되었다. 그 전승들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 원로원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하였다. 성녀 체칠리아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이교도인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4월 14일)라는 귀족 청년과 결혼하였으나, 결혼식이 끝난 후 그에게 자신은 동정 서약을 하였으며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말하였다.

 

성 발레리아누스는 그 천사를 보게 해 주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래서 성녀 체칠리아는 그를 교황 성 우르바누스 1세(Urbanus I, 5월 25일)에게 보내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하였다. 세례를 받고 돌아온 그는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 체칠리아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결국 그녀의 동정서약에 동의하였다. 또한 그의 동생인 성 티부르티우스(Tibrutius, 4월 14일)도 후에 천사를 보고 세례를 받았다.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 형제는 그때부터 신앙생활과 자선활동에 전념하다가 행정관인 알마키우스(Almachius)의 미움을 사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신전에 제사를 바치라는 행정관의 강요를 거절하여 심한 매질을 당한 후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성 막시무스(Maximus, 4월 14일)와 함께 참수되었다. 성 막시무스는 성 발레리아누스와 성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하였다.

 

성녀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자들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키우스와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그녀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방법은 그 당시 흔히 사형수에게 적용된 것으로 욕실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목욕실에 가둔 지 24시간이 경과하였어도 성녀 체칠리아가 죽지 않자 목을 베어 죽이기로 다시 결정하였다. 그러나 형리의 서툰 솜씨로 목을 베인 후에도 성녀는 3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다가 순교하였다고 한다.

 

성녀 체칠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성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녀의 순교 연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녀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성녀 체칠리아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내심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행적에 근거한 것이다. 그래서 성녀는 음악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전해졌다.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세워졌을 때 성녀는 이 학원의 수호자로 지칭되었고, 이후 성녀 체칠리아를 교회 음악의 수호자로 공경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성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성인들의 발자취] 성녀 체칠리아 성녀

음악의 수호자인 동정 순교자 - 축일은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의 생애는 많은 학자들 사이에 논란의 대상으로 남아 있으나 옛 전설에 의하면 체칠리아는 「로마」의 유서 깊은 명문 귀족의 딸로 태어나 행복한 가정과 인연을 끊고 하느님께 몸을 바쳐 신앙과 동정을 지켰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찌기 발레리아노라는 귀족 청년과 체칠리아를 결혼시킬 생각을 가졌었다.

 

성대한 결혼식 날. 결혼축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체칠리아는 발레리아노에게 자기는 하느님에게 종신서원을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신에게는 천사의 특별한 보호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교도인 발레리아노는 그 천사가 어떤 것인가를 보고 싶어 했으므로 체칠리아는 그를 울바노 교황에게 보내 교리를 연구케 하고 마침내 영세를 받게 했다.

 

그 후 발레리아노는 놀랍게도 체칠리아의 수호천사를 뚜렷이 목격하게 되어 한층 더 그녀를 존경하여 그녀의 종신서원을 쾌히 동의하는 한편 그의 동생 띠불띠노까지도 신앙에로 인도했다. 가난한 이에게 막대한 재산을 나누어 주는 한편 체칠리아를 도와 복음전파에 주력했던 발레리아노는 마침내 알마키오의 미움을 사게 돼 사형을 당했다. 동시에 체칠리아도 체포돼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갖은 위협과 감언이설을 배격, 신앙을 위해 희생할 결의를 굳혔다.

 

마침내 체칠리아는 목욕탕에 가두어 죽이는 가혹한 형을 받았으나 24시간이 지난 후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자 목을 베어 죽이기로 결정됐다. 군인들이 칼로 체칠리아의 목을 세 차례나 쳤으나, 목이 잘리지 않은 채 3일간 살아 있은 체칠리아는 그런 고통 속에서도 오른쪽 손가락 세 개와 왼쪽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3위 1체이신 하느님을 믿고 그를 위해 죽는다는 것을 표했다.

 

117년 체칠리아는 모든 재산을 교회에 봉헌하고 마지막 성체를 영한 후 숨을 거두었다. 그후 817년 빠스가리스 교황에 의해 체칠리아의 성해는 「로마」 성 체칠리아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1599년 그녀의 묘를 열어보니 조금도 부패하지 않은 채 생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음악의 수호자인 동정순교자 성녀 체칠리아의 축일은 11월 22일이다.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

 

5세기에 로마에서 체칠리아라는 이름을 지닌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성녀의 수난기에 기초하는 그에 대한 공경심이 널리 전파되었다. 이 수난기에서 성녀는 동정성을 보존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 때문에 순교한 그리스도인 여성의 완전한 본보기로 나온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시편 주해'에서

(Ps 32, sermo 1,7-8: CCL 38,253-254)

 

주님께 멋진 노래를 부르고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

 

"비파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십현금 맞추어 읊조리어라. 새로운 노래 불러 찬미하여라."새 노래를 알게 되었으니 낡은 것을 벗어 버리십시오. 새 사람, 새 계약, 새 노래. 새 노래는 낡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새 노래는 새 사람들만 즉 은총을 통해 낡은 것에서 새로워져 하늘나라의 새 계약에 속하는 사람들만 배웁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은 이 하늘나라를 갈망하고 새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나 입으로써가 아니라 생활로 부르도록 합시다.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멋진 가락을 읊으십시오."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어떻게 하느님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부르십시오. 그러나 음에 맞지 않게 부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주님은 당신 귀에 거슬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형제들이여, 멋진 가락을 읊으십시오.

 

누가 당신보고 음악 전문가 앞에서 그이 마음에 들도록 노래하라고 한다면 음악 기교에 대해 별 준비가 없는 당신은 그 전문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노래할 때 벌벌 떨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음악 전문가는 잘 인식하고 비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음악 평론가이시고 만사를 일일이 살펴보시며 만사를 잘 들으시는 하느님 앞에 가서 훌륭히 노래 부를 자신감을 지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렇게도 완전한, 귀에 거슬리지 않는 멋진 노래를 부를 기교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주님은 당신에게 다음 노래의 기교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가사 즉 당신의 내적인 정감을 알려 주는 듯한 그런 말들을 찾는 데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있어 훌륭히 노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을 언어로써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추수할 때나 포도를 거둘 때나 어떤 일을 열심히 할 때 노래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즐거움을 어떤 가사로써 표현하지만, 그 다음에는 감흥이 고조되면 말로써는 그 즐거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사 없는 가락으로 감흥을 털어 버립니다. 이것은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기쁨의 노랫가락은 마음이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출하게 하는 가락입니다.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께가 아니라면 이 기쁨의 노랫가락은 누구에게 더 마땅히 읊을 수 있겠습니까? 실상 당신이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분은 표현 불가능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당신이 말로써 표현은 못해도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면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는 것 외에 다른 방도가 있겠습니까?

 

그때 마음은 말의 도움 없이 기쁨으로 펼쳐져 그 기쁨의 광대함은 말의 한계를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멋진 노래를 부르고 기쁨의 노랫가락을 읊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