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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나라

파주 문화탐방(2014.11.03)

불꽃緝熙 2014. 11. 5. 12:57

    11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자원봉사자 파주문화탐방 만추의 계절, 파주의 옛 풍경 속을 걷다 2014년 11월 3일(월) 청명한 가을 날씨와 푸른 하늘을 벗삼아 중.근세관 봉사자님들과 선사고고관봉사자님과 함께 대한여행사 관광버스를 타고 경기도 파주 용미리마애이불입상,보광사,화석정, 비무장지대안의 현재 발굴중인 덕진산성을 살펴보고 무사히 돌아왔다. 박진일학예사 및 고고역사부 직원님께 감사드립니다. 파주시 개관 고려시대 때는 송도에 가까웠고, 조선 광해군 때는 기운이 쇠한(임진란이후) 한양을 버리고 파주의 交河로 도읍을 옮기자는 교하천도론이 제기되기도 한 吉地로 주목받았던 고장이 坡州다. 오늘날의 파주는 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그 지역 여건과 특성에 걸맞게 통일을 대비한 남북교류의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여 파해평사현과 술이홀현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파해평사현은 파평현으로 개칭되어 내소군의 영현으로 되고, 술이홀현은 봉성현으로 개칭되어 교하군의 영현이 되었다. 1387년(우왕 13)에는 봉성현이 서원현으로 개칭되면서 감무 대신 현령이 파견되었다. 1398년에는 파평현과 서원군이 합해져 원평군으로 개편되었다. 1414년에 1,000호 이상이 되어 다음해에 원평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460년(세조 6)에는 왕비 정희왕후 윤씨의 고향이라 하여 파주목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파주군으로 고쳐져 한성부 관할이 되었으며, 다음해 13도가 설치되면서 경기도 관할로 바뀌었다. 적성면과 전 장단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임진면에 편입되었다. 마식령산맥의 말단부에 속하고 북서쪽에는 임진강이 서남류하고 있어 東高西低의 지역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서남쪽으로 흐르는 한강이, 임진강 지류인 남월천과 문산천, 곡릉천이 있다. 임진강 하류지역에는 만조 때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탄현면과 장단면의 하안가에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고 있다. 長芝山龍岩寺(장지산용암사) 일주문 현판 壬辰淸秋(임진년2012년 맑은 가을) 友竹楊鎭尼(우죽 양진니가 쓰다) 대웅보전의 부처님 아래의 주련으로 보면 비로자나불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석가부처님으로 보인다. 특히 대웅보전은 석가불,아미타불,약사불 세 부처님을 모시는 것이 범례인데 이 곳은 문수와 보현보살을 협시하였다. 대웅보전의 주련 毘盧遮那眞法身 (비로자나불은 참으로 법신이시며) 願力弘深遍刹塵 (넓고 깊은 원력으로 두루 불국토를 이롭게 하시며) 偏有因緣於斯土 (이 땅에 인연이 치우쳐서) 普使群迷知題津 (널리 미혹한 군중을 구제하여 주신다) 梵鐘閣(범종각) 壬申肇冬錄(임신년 1992년 초 겨울 기록함) 西疇 鄭光溢(서주 정광일) 경기 파주 용미리 마애불 석불입상2구(보물 93 호): 고려초기 (10 세기) 경기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용암사 경내) 이곳 용미리(龍尾里) 라는 지명은 광주산맥을 타고 들어온 용들이 한양에 머물렀는데 그 꼬리가 이곳에 닿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용미리에 마애불이 새겨진 이유는 북에서 육로로 왔던 중국의 사신들이 묵던 숙소가 있던 벽제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벽제는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10 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이곳에 중국 사신들의 숙소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화장터로 더 유명해져 버렸지만) 벽제에서 묵었던 중국 사신들이 다시 북으로 올라갈 때 이곳의 육로를 이용하였으므로 그들의 안전한 귀국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곳 용미리에 마애불을 세웠다고 한다. - 이 2불상은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몸체로 하고 그 위에 머리를 따로 만들어 얹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을 취한 마애불로는 경북 안동 이천동 석불입상 (보물115 호), 충남 논산 상도리 마애불, 경북 봉화 봉성리 마애불 등이 있다. 게다가 고려 초기에는 불상이 거대화되고 지역별로 토속화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런 특성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용미리 마애불이다. - 나란히 서 있는 2 개의 불상중에서 둥근 갓을 쓴,오른쪽 불상은 남자상 (미륵불)으로서 양 손에는 무언가 (연꽃 등) 를 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바로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네모난 모자를 쓴 왼쪽 불상은 여자상(미륵보살)으로서 두 손을 합장하고 있다. 龍尾里 마애불 석불입상의 뒷모습 이곳은 고려 초기 선종의 후궁인 원신궁주(元信宮主)가 아들 '한산후'를 낳기 위해 지금의 용암사 자리에 이 마애불을 만들어 놓고 공양하고 기도한 곳이라는데 이러한 사실이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앞 왼쪽(정면에서 보아 오른쪽) 아래부분에 새겨져 있어 그 역사적 진실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왼쪽부터 미륵전과 삼성각 고령산 보광사 '동국여지승람' 과 退耕 權相老선생이 수집해 놓은 "寺刹全書" 보광사조에는 고종 광무 5년(1901) 朗應 鏡臨이 지은 '고령산 보광사 법전 중창 병단호기서(古靈山普光寺法殿重創幷丹雘記序)가 실려 있는데 여기서 겨우 절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다. 영조대왕의 어머니이신 淑嬪최씨의 묘소가 가까이 昭寧園의 願刹이기도 한 천년고찰인 普光寺는 신라 진성여왕 8년(894) 道詵국사가 初創하고 고려 고종2년(1215) 圓眞국사가 重創, 우왕 14년(1388) 無學대사가 三創, 현종 8년(1667) 智侃, 釋蓮 양 선사가 四創, 영조 16년(1740) 重修, 고종 광무 5년(1901)의 중수가 있었다고 하였다. 옛 신령스런 산(고령산)에 육계의 정토(도솔)꽃 내려 와 피니 넓은 빛(보광)이 온 세상을 밝게 비추네 -성파 대종사 범어중에서- 만세루앞의 木魚 대웅보전(大雄寶殿) 갑자중추옥간서(甲子仲秋 玉澗書)라는 관서(款書)가 붙어 있다. 옥간이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한석봉체 계통으로 결구도 좋고 필력도 있으며 서법도 단아하여 손색없는 명필이다. 영조의 친필로 전해 지기도 한다. 대웅보전5존불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폿집, 주존 석가모니불과 동방(좌) 약사불, 서방(우) 아미타불을 모셨고 그 옆에 자씨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 양대 보살을 협시하였다. 주존이신 목조석가여래좌상은 높이 106cm,어깨높이 68cm이며, 고려 고종2년(1215) 원진국사가 중창할 당시 法敏대사가 木造佛菩薩像 5위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웅보전의 부처님 보개(寶蓋)아래 연꽃등을 보시(布施)하신 박근혜대통령, 심상정의원, 김문수 도지사, 이인재 파주시장의 이름표가 보인다. 용이 대들보에 걸쳐 대웅보전을 지키고 있다 대웅보전 외부 판벽화, 위태천도(韋駄天圖) 대체로 전각의 벽체는 흙이나 회를 바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벽체는 모두 판자를 끼운 판벽이다. 판벽은 회벽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져 그곳에 그려진 벽화들의 수명이 짧다. 남측 면에 불교의 호법선신인 위태천을 그린 '韋駄天圖'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묘사한 '騎獅文殊童子圖(기사문수동자도)'이며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金剛力士圖(금강역사도)' 등 3점이 그려져 있다. 기사문수동자도(騎獅文殊童子圖) 금강역사도(金剛力士圖) 동측 면에'龍船人接圖, '老松圖','大虎圖' 그리고 '怪石圖','蓮華化生圖' 등 5점이 그려져 있다. 용선인접도(龍船人接圖) 대호도(大虎圖) 노송도(老松圖) 괴석도(怪石圖) 연화화생도(蓮華化生圖)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기상보현동자도(騎象普賢童子圖) 古靈山普光寺 上祝序 我 聖上中興上 寶位之祀卽是上 元甲子歲也上自殿閣宮寢下至 閭巷一新刱起至於寺刹咸夥 革新焉矧玆古靈久塵刱掃 二殿兩寮一時于新豈非 國家鴻運而 大院位抹樓下宿願所致歟故 壽鐫永枕俾母替呼萬歲云 主上殿下 壬子生 聖壽無疆 王妃殿下 辛亥生 閔氏聖壽無窮 大院位抹樓下 庚辰生 李氏萬壽无疆 府大夫人 戊寅生 閔氏萬壽无窮 歲在己巳季秋上瀚佛國爲書 고령산보광사 축을 올리는 글 성상께서 중흥 보위에 오른 것이 갑자년(1864년)이다. 전각궁궐에서 여항 저자거리까지 하나로 새롭게 일으키시니 사찰도 다 함께 많은 혁신을 하였으며 하물며 이 고령산의 오랜 먼지와 때를 쓸어버리고 2개의 전각과 2개의 요사채를 일시에 새롭게 지으셨으니 어찌 국가의 큰 홍운이 아니겠습니까? 대원위말루하의 숙원을 이루었으니 그러므로 수(壽)를 영원히 새겨 만세를 부르니, 이르기를 주상전하,임자생(1852년), 성수무강, 왕비전하,신해생(1851년), 민씨만수무궁 대원위말루하,경진생(1820년), 이씨만세무강, 부대부인,무인생(1818년), 민씨만세무궁 기사년(1869년) 가을상순 부처의 나라에서 쓰다. 대웅보전으로 불자들의 출입구 상인방위에 걸어놓은 현판의 글을 저의 임의적인 해석으로 올렸습니다. 어실각(御室閣) 영조대왕의 사모곡이 스며있는 곳, 어머니 숙빈최씨의 위패를 모신 곳 숙빈 최씨는 인현왕후궁의 무수리로 출발하여 그 왕후가 폐출되었을 때 지극 정성으로 복위를 기원한 공덕으로 숙종을 감동시켜 자신은 후궁이 되고 인현왕후는 복위되는 극적인 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숙빈 최씨의 신위 和敬徽德安順綏福淑嬪海州崔氏之神 位 (화경휘덕안순수복숙빈해주최씨지신 위) 영조대왕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300년된 향나무 원통전, 혹은 관음전,보타전이라 부르며 관세음보살을 모셨다 지장전, 혹은 명부전,시왕전이라 부르며 지장보살을 모셨다 花石亭詩(화석정시) -八歲賦詩(팔세부시)-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속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산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색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고?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이 이 지음 이동석 옮김 율곡 이이 선생은(1536 : 중종31~1584년 : 선조17) 조선중기 대표적 성리학자로 정치.경제.사회.국방.교육 등 전분야에 걸쳐 개혁정책을 실현한 경세가였습니다. 화석정시는 율곡선생이 8세 때 지은 시로, 화석정의 가을 정취와 선생의 시상을 조화롭게 엮은 아름다운 시입니다. 임진강을 바라보며 옛날 선조가 황급히 의주로 몽진 할 때 비 쏟아지는 칠흙같은 임진강에서 배를 건너기 위하여 불을 밝히려고 정자에 불을 질렀다는 고사를 회상하며 유비무환,사회안정,국론통일,경제성장 이율곡의 십만양병설등 안보가 그 으뜸이다 국운이 날로 넘치는 한 해가 되시길 빌면서... 파주임진팔경 제1경 花石賞春(화석정의 봄) 花石亭前花事新(화석정에 새로핀 꽃을) 獨來吟賞有閑人(홀로 감상하는 나그네) 幽芳擧世無相識(유방-유방-을 온 세상이 알지 못하니) 可惜先生去後春(탄식한들 선생-율곡-이 가신 뒤 봄이라네) * 유방(幽芳) : 드러나지 않게 풍겨오는 은근한 향기, 사군자 중 蘭을 일명 유방이라고 하여 율곡선생의 정신 기품 명성 등을 이름 제2경 場巖垂釣(장암의 낚시), 제3경 松巖晴雲(송암의 맑은 구름), 제4경 長浦細雨(장포의 가랑비), 제5경 東坡玩月(동파의 달놀이), 제6경 赤壁泛舟(적벽의 뱃놀이), 제7경 桐園暮雪(동원의 저녁눈), 제8경 津寺曉鍾(진사의 새벽종) *출처 坡州牧邑誌(1841년 현종 7년), 유래는 조선 숙종 때 문신인 호곡 남용익 선생이 來蘇亭에서 바라 본 임진강 주변 8경의 아름다운 풍경을 읊은 시 * 내소정- 임진강가에 있던 정자, 연산군의 장인 신승선이 건립했다고 함 조사개요 0 유적명 : 파주 덕진산성 3차 학술발굴조사 0 허가번호 : 제 2014-0391 호(2014.04.21) 0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정자리 산13 일원 0 조사유형 : 학술 시.발굴 0 조사기간 : 착수일로부터 45일간(실조사일수 기준) 착수일(2014년 09월 15일) 0 조사면적 : 3,100m2(발굴조사- 1,000ㅡm2, 시굴조사-2,100m2) 0 조사기관 : (재)중부고고학연구소 0 조사의뢰기관 : 파주시청 0 조사단 구성 : 조사단장 : 김권중(중부고고학연구소장) 책임조사원 : 강병학(중부고고학연구소 조사연구부장) 조사원 : 박현준(중부고고학연구소 조사팀장) 준조사원 : 홍현진(중부고고학연구소 연구원) 보조원 : 서승완(중부고고학연구소 연구원) 조사경과 ㅁ 1992년 :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조사단의 지표조사로 확인 ㅁ 1994년 :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의 지표조사 ㅁ 1999년 : 한양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 ㅁ 2004년 : 육군사관학교 화랑대연구소의 지표조사 및 시굴조사 ㅁ 2005년 : 국립 문화재연구소의 지표조사 ㅁ 2012년 06월 26일 : 중부고고학연구소 발굴조사(1차) 착수 ㅁ 2012년 07월 16일 : 발굴중지 ㅁ 2012년 08월 27일 : 발굴조사(1차) 재착수 ㅁ 2012년 09월 03일 : 1차 학술자문회의 개최(조사지역 재협의) ㅁ 2012년 10월 23일 : 2차 학술자문회의 개최 ㅁ 2012년 11월 29일 : 현장조사 완료 및 철수 ㅁ 2013년 03월 11일 : 중부고고학연구소 발굴조사(2차) 착수 ㅁ 2013년 04월 15일 : 학술자문회의 개최 ㅁ 2013년 05월 16일 : 현장조사 완료 및 철수 ㅁ 2014년 05월 07일 : 중부고고학연구소 발굴조사(3차) 착수 ㅁ 2014년 05월 09일 : 현장조사 중지(경기도 현상변경허가) ㅁ 2014년 09월 15일 : 발굴조사(3차) 재착수 ㅁ 2014년 10월 08일 : 1차 학술자문회의 개최(조사방향 검토) ㅁ 2014년 10월 29일 : 1차 변경 허가 (내외성 연접부와 외성 문지의 추가 발굴, 외성 시굴 제외) ㅁ 2014년 10월 31일 : 2차 학술자문회의 개최 ㅁ 2014년 11월 06일 : 3차 학술자문회의 개최 비무장지대(DMZ) 안에서 발굴작업은 늘 주의해야한다, 지뢰밭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바로 이곳이 기와와 그릇이 출토되어 덕진산성 북쪽 지휘소 건물터로 보인다. 기와와 그릇 등 출토된 유물 현재 발굴지휘소가 아마도 옛 고구려 혹은 신라의 전방지휘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구와 기와 파편의 출토 임진강의 유일한 섬 초평도 특히 초평도습지는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기수역 습지로 DMZ일원의 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중원문화의 한 획을 긋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한국동란이라는 비극도 잊고 분단된 조국을 원망하면서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나룻터에 가까운 강 -臨津江-이 되도록 우리를 반겨준다. 이것으로 박물관 추계답사 파주일대를 잘 다녀왔으며 많은 공부했습니다. 사진과 글 권진순 2014년 11월4일 본문의 한문해석은 저의 임의적인 해석이므로 혹시 번역이 잘못되어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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