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난처하긴 했지만 단칸방의 아랫목을 그 처녀에게 내준
스님은 윗목에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습니다.
스님의 경 읽는 음성은 참으로 낭랑했습니다.
고요한 산중에 울려퍼지는 그 음성은 마치 신비경으로
인도하는 듯 처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처녀는 그날 밤부터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지요.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처녀는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왔으나 마음은 늘 백운암 스님에게 가 있었습니다.
스님을 사모하는 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가
마침내 처녀는 병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을에서 지체 있는 가문의 무남독녀인 처녀는
좋다는 약을 다 썼으나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그러니 처녀의 부모님 걱정은 태산 같았지요.
처녀의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좋은 혼처가 나와도
고개를 흔드는 딸의 심정을 알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얘야, 네 소원을 다 들어줄 테니
어찌된 연유인지 속 시원히 말해봐라.』
처녀는 지날날 만났던 젊은 학승 이야기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숨김없이 다 고백했습니다.
사연을 들은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스님이 아니면 제 딸이 죽습니다.
한 생명 건지신다 생각하시고 제 딸과 혼인하여 주십시오.』
아무리 애걸하여도 젊은 스님의 굳은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후 얼마 안가서 처녀는 병이 깊어져 죽게 됐습니다.
『어머니, 소녀 아무래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불효를 용서하옵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님 얼굴 한번만 보고
죽는다면 소녀 원이 없겠사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스님은 마음속으로 안됐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 처녀 집을 방문치 않았습니다.
처녀는 그만 한 맺힌 가슴을 안고 눈을 감았고,
그 뒤 영축산 호랑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여러 해가 또 지나 그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하여
드디어 산중 강사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연화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면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휙」하고 큰 호랑이가 감로당 지붕을
이리저리 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흥, 어흥」 호랑이는 문을 할퀴면서
점점 사납게 울부짖었습니다.
대중들은 수군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변일세. 필경 대중 속에 누군가가
저 호랑이와 무슨 사연이 있을 걸세.』
『그렇다면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져보세.
그럼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것이 아닌가.』
연회석에 참석한 스님들은 저고리를 벗어
하나씩 밖으로 던졌습니다.
호랑이는 하나씩 받아서는 그냥 옆으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지막으로 새로 취임하는 강백 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마구 갈기갈기 찢으면서
더욱 사납게 울부짖는 것이었습니다.
대중들은 강백이 바로 호랑이가 노리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무도 말을 못하고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때, 강백 스님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소승의 속세 인연인가 봅니다.』
말을 마친 스님은 합장 예경하고 바깥 어둠 속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아무도 스님을 말리려 들지 못했습니다.
호랑이는 강백 스님을 나꿔채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산중의 모든 대중은 강백 스님을 찾아
온 산을 헤매였습니다. 깊은 골짜기마다 다 뒤졌으나 보이지 않던
강백 스님은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등성이에 상처 하나 없이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백 스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남성의 「심볼」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 통도사에서는 호랑이의 혈(血)을 눌러야겠다고 하여
큼직한 반석 2개를 도량 안에 놓게 되었습니다.
이를 「호혈석(虎血石」「호석(虎石)」이라 부르는데
지금도 산신각에서 20m 남쪽 응진전 바로 옆과
극락전 옆 북쪽에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