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개막식,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승리자,'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연출가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기를 바랐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폭력과 같은 단순함이 아닌)
놀라운 정신력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금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이라고 하는 '손' 노인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축제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태극기가 올라가자 이 '황영조' 는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손기정'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을 가슴에 품은 '손' 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한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비극적인 눈물로 시작된 역사일지라도
환희와 고귀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과 국가와 민족의 존엄을
이 한국인, 그리고 한국 민족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