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연기 뿜고 1시간 뒤 나온 교황, 어디서 뭘 했을까
✺흰 연기 뿜고 1시간 뒤 나온 교황, 어디서 뭘 했을까
|선출 직후 '눈물의 방'으로 이동
|흰색 예복으로 갈아입는 공간
|역대 교황들 책임감에 많이 울어
새로운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비밀투표)가 열리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 위치한 '눈물의 방' 모습. 새로 선출된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나타나기 전 이곳에서 즉위명을 결정하고, 전용 의복을 착용한다. /AP 연합뉴스
8일 오후 6시 8분,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투표)가 열린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는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후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신임 교황 레오 14세가 얼굴을 드러낸 건 그로부터 1시간이 지난 7시 10분쯤. 이 한 시간 동안, 교황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
먼저 추기경단 3분의 2 이상 표를 얻은 후보는 “교황 선출을 수락하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여기에 동의하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즉위명’을 정한다. 이 절차가 끝나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모든 투표용지와 문서는 소각된다.
이후 새 교황은 시스티나 성당 내부의 작은 제의실인 ‘눈물의 방‘으로 이동한다. 막대한 소명을 지게 됐음을 깨달은 새 교황이 이곳에서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1878년 교황 레오 13세(당시 67세)는 선출 직후 이곳에서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2005년 교황에 선출된 베네딕토 16세는 2016년 회고록에서 “진심으로 선출되지 않기를 바랐다. 저에게는 진정 눈물의 장소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프란치스코 교황 등도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본래 교황의 의복을 보관하고 옷을 갈아입는 공간이지만, 교황이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는 곳이라는 상징성이 더해진 것이다.
새 교황은 이곳에서 붉은색 추기경 수단을 벗고 교황이 입는 흰색 수단으로 환복한다. 소형·중형·대형 크기별로 준비돼 있고, 붉은색 교황 신발과 흰색 주케토(모자)도 마련돼 있다. 1958년 교황 요한 23세는 큰 체구 탓에 예복 곳곳을 옷핀으로 고정한 거울 속 자신을 가리켜 “텔레비전에 나오면 재앙일 것”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검소한 성품을 가졌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붉은 망토를 두르지 않고, 평소 신던 신발을 신고 나가 이목을 끌었다.
눈물의 방을 나온 교황은 시스티나 성당으로 돌아와 짧은 예식을 갖는다. 이때 나머지 추기경들은 새 교황 앞에 줄 서서 경의를 표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 교황은 인근 파올리나 성당에 들러 기도를 드린 뒤,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로 향해 신자들 앞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다.
✺레오 14세 즉위 후 복장 분석, 진보와 보수 사이… 교황 드레스 코드에 담긴 '힌트'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던 레오 14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된 배경에 진보·보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가톨릭 교회의 고민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교황의 옷차림 역시 전통과 격식을 존중하면서도, 전임 프란치스코의 개혁적 정신을 잇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는 평가다.
레오 14세가 지난 8일 선출 직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옷차림에 그런 특징이 드러난다. 교황은 당시 진홍색 모제타(mozzetta·어깨를 덮은 짧은 망토)에 금실로 수놓은 붉은 영대(領帶·목에 걸치는 띠), 금색 십자가 목걸이를 착용하고 대중에게 인사했다.
2013년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가 첫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제타와 영대 없이 흰 수단(사제복)에 철제 십자가만 착용했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교황권을 상징하는 ‘어부의 반지’ 역시 프란치스코는 은색을 선택했지만 레오 14세는 금색을 착용했다.
레오 14세의 옷차림은 베네딕토 16세, 요한 바오로 2세 등 선대 교황들의 첫 인사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영국 더타임스는 “전통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교회 내 보수층을 의식한 옷차림”이라고 분석했다. 프란치스코는 50달러(약 7만원)짜리 플라스틱 스와치 시계를 착용하며 ‘청빈’을 강조했지만, 레오 14세는 애플워치를 찬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레오 14세는 ‘프란치스코 스타일’을 계승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교황만 신을 수 있는 붉은 구두 대신 검은 구두를 선택한 점이 우선 그렇다. 지난 11일 첫 삼종기도 때는 흰 수단과 은색 십자가만 착용하고 대중 앞에 섰다. 역시 프란치스코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이었다. 8일 시스티나 경당에서 집전한 미사 때도 프란치스코처럼 흰색 제의와 간소한 주교관을 착용했다.
바티칸 안팎에선 레오 14세가 선대 교황들의 ‘전통’과 전임 프란치스코의 ‘개혁’ 코드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균형을 잡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생전 프란치스코는 서명에 교황만 덧붙일 수 있는 표현 ‘PP(Pastor Pastorum·목자들의 목자)’를 쓰지 않았으나 레오 14세는 이를 되살렸다. 가톨릭 사제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생활했던 프란치스코와 달리 과거 교황들의 관저였던 ‘사도 궁전’으로 복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면서도 레오 14세는 교황 공식 문장에 주교 시절부터 사용했던 ‘그 한 분 안에서 하나’라는 사목(司牧) 표어를 넣었다. 교황이 되면 표어를 쓰지 않는 관례를 깨고 자신의 표어 ‘자비로이 부르시니’를 넣었던 프란치스코의 ‘파격’을 레오 14세가 바로 계승한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2025년 05월 13일(화)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원선우 기자)
✺레오 14세, 첫 투표부터 유력 후보였다... 새 교황 선출 당시 상황은
|'경청'과 '협력'이 강점인 교황에게 추기경 마음 쏠려
|추기경들은 모두 눈물 흘리며 기립박수
8일 267대 가톨릭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AP 연합뉴스
지난 8일 267대 가톨릭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69)는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 투표)가 있기 전까지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정작 투표에서는 그가 초반부터 선두권을 형성했고, 추기경 선거인단의 표가 급격히 쏠리면서 최종 선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 콘클라베에 참여한 12명 이상의 추기경과 바티칸 교황청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레오 14세가 선출된 과정에 대해 전했다.
전 세계에서 바티칸으로 모인 추기경 133명은 7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를 열었다. 추기경들은 지정된 좌석에 앉아 비밀 엄수 서약을 했고 오후 6시 직전 예배당의 문은 닫혔다. 약 한 시간 동안 현재 맡은 임무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콘클라베를 주재한 피에트로 파롤린(이탈리아) 추기경은 첫 투표를 다음 날 오전으로 연기하기를 원하는지 추기경들의 의견을 물었다. 추기경들은 저녁 식사를 하지 못하고 휴식도 취하지 못해 지친 상태였다고 한다. 하지만 추기경단은 투표하기로 했고 오후 7시 30분쯤 시작됐다. 오후 9시 시스티나 성당의 굴뚝을 통해 교황을 선출하지 못했다는 의미의 검은 연기가 솟았다. 다만 첫 투표에서 후보가 상당히 좁혀졌다고 한다. NYT는 “바티칸 내부자들에 따르면 파롤린 추기경, 페테르 에르되(헝가리) 추기경,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첫 투표에서 상당한 득표를 했다”고 했다.
7일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6시쯤 성당 문은 굳게 닫혔다. /EPA 연합뉴스
결정적인 순간은 이 직후 찾아왔다. 추기경단은 바티칸 내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으로 이동해 머물렀다. 추기경들은 휴대전화도 없이 외부와 철저히 차단됐다. 빈센트 니콜스(영국) 추기경은 “산타 마르타에 도착하자 각 후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많은 득표를 한 추기경들에 대해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정리해가는 시간이 있었다는 의미다. 추기경들은 레오 14세가 수십 년 동안 남미 페루에서 활동했고 유창한 언어 실력을 갖췄다는 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알며, 그 누구와도 잘 협력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시카고의 블레이즈 J. 쿠피치 추기경은 “교황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누가 주교가 되어야 할지 조언을 받는다”며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능력은 교황에게 그만큼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출신이지만 남미에서 오래 활동한 레오 14세에게 북미와 남미 추기경들의 지지가 모이기도 했다.
반면 유력 후보였던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탈리아 추기경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고 일부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전 교황이 강조했던 협력적 회의 방식에 대해 파롤린이 강조하지 않은 점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에르되 추기경의 경우 보수파의 지지를 받았지만, 진보적 성향의 프란치스코 전 교황 시절 임명된 추기경이 133명 중 108명으로 다수인 상황에서 한계를 보였다. 콘클라베 둘째 날 상황은 명확해졌다. 한국 유흥식 추기경은 “네 번째 투표에서 표가 압도적으로 (레오 14세 쪽으로) 쏠렸다”고 했다.
8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새 교황이 선출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 올랐다. /로이터 연합뉴스
콘클라베 과정에서 레오 14세가 보인 인간적인 면모도 전해졌다. 콘클라베 경험이 없던 새 교황은 애초 유력 후보로 알려진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필리핀) 추기경에게 투표 전 “(이 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타글레 추기경은 새 교황이 많은 표를 얻기 시작하면서 그가 숨을 깊게 내쉬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NYT에 “내가 그에게 ‘사탕 하나 먹을래요’라고 물었고 그는 ‘예’라고 했다”고 전했다. 약 30년간 레오 14세를 알고 지낸 미국 뉴저지 뉴어크의 조셉 W. 토빈 추기경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순간 그를 바라봤다”면서 “(레오 14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고 했다. 네 번째 투표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교황 선출에 필요한 정족수인 89표에 도달했을 때 추기경이 모여 있던 방 안에서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새 교황으로 즉위하게 된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누군가 옆에서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모두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비밀 엄수 서약으로 정확한 득표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데지레 차라하자나(마다가스카르) 추기경은 “그(레오 14세)는 매우 매우 많은 표를 얻었다”고 했다. 그렇게 새 교황이 선출됐다.
출처: 조선일보 2025년 05월 13일(화)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욕=윤주헌 특파원
교황 레오 14세가 10일 이탈리아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무덤을 참배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