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밤의 사진편지 제1000호(함수곤의 편지 제1호 포함)
함수곤의 한밤의 사진편지제 1000 호 (09/3/13/금)
'한밤의 사진편지' 제 1000호에 즈음하여
'한밤의 사진편지'를 시작한지 만 4년만에
드디어 2009년 3월 13일(금),제1000호를
보내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한밤의 사진편지' 제 1000호는 단순히
저의 천 번째의 편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것은 제가 '한밤의 사진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후
저의 사고와 감성과 시간과 생활을 이 편지가
집요하게 조종하고 움직여 온감이 없지 않기 떄문입니다.
그만큼 '한밤의 사진편지'는 저의 은퇴 후 생활에서
큰 자리를차지하고 있었고 어느 면에서는
저의직업이었으며 분신이었다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술이 취해서 밤 늦게 귀가해서도 몽롱한 정신 속에
키보드를 두드려 이 편지를 보내야 비로소 잠이 들수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도 숙소에 컴퓨터가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컴퓨터 앞으로빨려 들어가 독자들을 향해
마치 현지 특파원처럼 일보를 날려야 성이 풀렸습니다.
외국에 나가걷기를 하면서까지도 자기도 모르게
호텔의 컴퓨터 부스 안에 들어가
걷기참가자들의 동정과 상황을 현지 중계하듯
본국의 독자님들께 전하고서야 객실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한밤의 사진편지'는 저의 천직처럼 되었고,
하나의 신앙과 같은 차원의 일거리였다고도 말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보조 직원과 사무실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비지니스 성격을 띠고 상업적으로 운영되는 편지도 아니었습니다.
어느 다른 이메일 편지들처럼 광고와 부대 사업을 하며 독자를
끌어들여 꾸준히 사업적으로 확대해나가는편지는 더구나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저 혼자의 힘으로 조사하고 구상해서 집안의 책상 위에 있는
낡은 컴퓨터 한 대를 이용하여
순수한 비영리적인 개인 이메일 레터로 만 4년동안에 1000호를
한결같이 보내드린 편지였습니다.
지난 4년 동안 무엇 때문에 그처럼 고달프고 힘든 작업을
이어 왔느냐고 묻는다면 '저도 잘 모르겠다'는 말이
아마 가장 솔직한 답변이 될지도 모릅니다.
조금모양을 내서 표현한다면
인간으로서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는 것처럼
저에게 느낄 수 있게 만든 마약과 같은 존재가 바로
'한밤의 사진편지'였다고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Maslow)는 오래 전에
사람의 욕구 단계를 가장 낮은 단계인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자존심의 욕구, 그리고
가장 높은 차원의 '자아실현의 욕구' 등 5단계로 구분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되돌아 보니 지난 4년동안 저는
소속감의 욕구와 존중받고 싶어하는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 등과 같은
인간의 아주 고급스런 욕구를 바로 이 '한밤의 사진 편지'를 통해서
어느 정도 충족시켜 온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업은 힘이 들긴 했으나 저의 중요한 욕구 총족의
수단이 되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마치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어야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듯이
제가 속해 있는 공동체와 유대를 다지고,관련된 사람들로부터 존중받고,
그리고 저의 자아실현 욕구 등을 충족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밤의 사진편지'는 저의 퇴직 후 조금 높은 차원의 욕구들을 채워주는
마치 밥이나 물, 공기, 돈 등과 같은존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런 작업의 과정과 결과는비단 저의 욕구 충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가까운 여러분들에게약간의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길도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의인지는 저의 욕구 충족 이상의만족과 즐거움을
저에게 안겨주었습니다
사람은 욕구가 충족되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 합니다.
그래서 저도 '한밤의 사진 편지'를 만들어 보내면
저의 그런 욕구가 충족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고
받는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 같아 행복했었습니다.
이러한 만족감과 행복감, 즐거움이 바로'한밤의 사진 편지'를
4년 동안 1000호가넘게 지속시킨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을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감성과 체력과 의지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 작성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신체적인 능력중에서
불행하게도 저는 視力에 문제가 있습니다.
오른쪽 눈에 녹내장 진행 증후를 가지고 있어 안과 전문의사의
정기적인 관리를 받고 있는 저는 진작부터 컴퓨터를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는
담당 의사의 주의를 들어 왔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1000호는 달성해야겠다는
저의 무리한 욕심과 집착이 그 주의 같은 것은 들리지도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제1000호를 달성하면서 저는 그 경고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렇게조심하는것이 '한밤의 사진편지'가
아주 영영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01호부터는 발행 회수를 줄여서 일주일에 화요일과 목요일,
주 2회만보내드리기로 하였습니다.
화요일에는 언제나 주말걷기의 안내와 후기를 보내드리고
목요일에는 그외의 이야기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250여명의 독자님도 대폭 축소해서 주말 걷기 회원님에
한정해서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이 편지가 주말걷기를 안내하고 정리하는 메우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주말걷기 회원님은 우선적으로 보내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외의 독자님이 제 편지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외의 독자님께서는
저의 불로그 ( blog.daum.net/ham60 )에서 편하신 시간에
언제든지자유롭게열어보실 수 있도록 제 블로그에
'한밤의 사진편지'를 모두 올려 놓겠습니다.
종전과 같이 이메일 편지함에서 보실수 없더라도
저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계속 애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즐겨찾기'에 추가해 놓으신다면 오히려
종전의 편지함 보다 더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한밤의 사진편지'를 애독해주시고 저에게
많은 사랑과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제 1000호에 즈음하여축하와 격려를 보내주신
수많은 독자 님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그동안 '한밤의 사진편지'에 야한 사진과 글을 자제하도록
끊임없이 충고해주고, 힘든 교열작업을 맡아
한밤의 사진편지가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도와준
잔소리쟁이 아내이자 친구인 박현자 편집 고문에게 마음 속으로부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한밤의 사진편지 대표 겸 편집 주간
함수곤 드림
[옮기는 글 : 덕운 김태종] |
<회고>
지금부터 4년 1개월 전에 보내 드렸던 한밤의 사진 편지 제 1호를
아래에 다시 보내드립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함수곤의 편지'라는
타이틀로 보냈었습니다.
그 때 제 편지를 받던 독자는 몇 분 안 되었기 떄문에
이 글을 보면 아련히라도 기억이 나시는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저는 영국 런던대학교에서 1년간 지내다가 05년 1월 29일에
귀국해서구정 연휴(2.8-10)를 마치고 일요일인 2월 13일부터
'함수곤의 편지'란 타이틀로 이메일 편지를 저와 가까운
친구 30여명에게 보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제일 처음 보내는편지의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고심했는데 아무래도 교육문제로 출발하는 것이
편하고 익숙할 것 같아'프랑스의 교육개혁'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편지 내용과 관련된 사진을 메일 본문 속에 넣는 방법을 잘 몰라서
옹색하게 본문 밖에 첨부 파일로 보낸 것을 보니 지금에 비하면 많이
서툴고 어설픈 편지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음악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올릴 줄 몰랐기 떄문입니다.
그 뒤 3월부터는 '함수곤의 편지'를 '한밤의 사진편지'로 제명을 바꾸었습니다.
음악은 어느 날 독산동에 있는 한국교육과정 연구회 사무실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만난 박용진 회장님께서 '그 편지에 음악이 들어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음익은 이렇게 올리면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셔서 그 덕분에 4월부터 처음으로
음악이 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밤의 사진편지는 글과 사진과 음악이 들어간
오늘과 같은 편지가 되었고 호수가 쌓여 이제 1000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애독자 김용만 님은 요새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가끔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한밤의 사진편지'는 전에 비하여 참 많이 세련되고 발전되어
초창기의 편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멋진 수준이 되었다."
정말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독자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함 수곤의 편지 제 1 호 (05/2/13/일)
안녕하셨습니까?
교육을 개혁하는 일은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힘이 많이 들고 말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바로 며칠 전 2월 10일, 프랑스에서는고등학교 학생
10만여 명이 파리와 리옹 등 대도시에서 거리로 뛰어 나와
'교육개혁법안'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언제 이와 유사한 사태가 일어 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어린 아이들은 어찌나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표현 욕구와 충동이 강한지 정말 놀라운 수준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고등학교 학생이
10만여명이나 거리로 뛰어 나오는 사태는
대단히 심각한 현상이고 큰 사회 문제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며 반대한 교육개혁 법안의
주요 내용은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 과목을
12 개 과목에서 6개 과목으로 줄이고,
지금까지 졸업 전에 한번만 치르던 시험을
연중 평가 방식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부가 이렇게 개혁하려는 취지는 궁극적으로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렇게 바꾸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외국어. 정보기술. 수학 등
실용적인 학문만 강조되고, 교양과목은 점차 배제되어
결국 비판 정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교육을 마치고 빨리 노동시장에 투입하기 위한
속셈을 가진 개악 법안"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렇게 시위를 벌이며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소식을 듣고 혹시 시험 과목에서 제외되는
과목 담당 교사의 부추김 같은 것이 어린 고등학교 학생 시위에
작용하지는 않았는지 그런 엉뚱한 생각을 제 멋대로 해보았습니다.
프랑스의 선생님은그렇게 비교육적인 선생님은 없을 것이고
어디까지나 학생들의 순진한 반대 시위였는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파리에서 시위에 참가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피용'이라는 교육부장관의 이름을 딴 '피용 법안 반대'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 몇장을
아래 첨부파일로 보내드립니다.
저는 이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교육문제 특히 교육과정 ,
교육평가, 교과내용 등이런 것들을국가나 학생, 교원들의
구미에 맞게, 그리고영양가도 있게 다루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디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베네스빌에서 함 수곤 드림
출처: http://tjongkim.tistory.com/3189 [너와나 그리고 우리]